인류 최강의 무기이자 최악의 무기인 핵무기는 전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이며 핵무기의 사용은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가장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전쟁 상황중 하나이다. 그런데 미국과 소련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며 핵 경쟁을 하던 냉전시대에 하마터면 핵전쟁이 도래할뻔 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소련의 단 한사람이 막아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혹시 아는가? 오늘은 핵전쟁을 막아낸 러시아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내 일이었고, 나는 단지 할 일을 했을 뿐"
1. 미국과 소련 냉전시대 시대적 배경과 핵전쟁 전략
핵 무기 사용을 통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류는 핵무기에 대한 위력을 실감했고 이는 곧 공포로 가득찬다. 여기에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가 서로 앞다투어 핵 무기 개발을 진행하면서 1980년대 들어서는 서로를 향한 핵의 칼날에 두려움이 팽배해 있었다.
1.1 1983년 곧 전쟁이 시작된다? - 배경
특히 1983년 냉전시대 두 진영의 갈등은 극에 달해 있던 상황이었는데, 당시 미국 대통령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였고 여기에 우리나라의 대한항공 KAL기가 소련 영공을 실수로 침범했다가 바로 격추당하는 비극까지 일어나며 곧 전쟁이 일어나도 무방한 지경까지 치달았다.
여기에 자유진영세력의 NATO가 선제 핵공격 훈련을 시행한다는 소식이 소련에 들려왔고 소련 역시 이에 맞대응하는 훈련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나라의 장거리 미사일 등이 소련을 겨누는 곳에 배치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1.2 당시 핵공격과 방어에 대한 전략
1983년 당시 어느 한쪽의 핵공격이 시작되면 단순히 핵 한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에 상대 핵기지를 타깃으로 수많은 핵을 동시 발사하여 적의 핵공격을 막고 나의 핵공격을 성공시키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따라서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방의 핵공격 이상징후를 파악하기 위하여 핵미사일 감지 시스템을 가동하고 서로의 핵을 감시하였다. 또 서로를 향한 핵 발사가 모두 죽을 수 있는 공멸일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가 핵을 막는 상황이었다.
2. 미국이 핵공격을 시작했다고?
1983년 9월 27일 새벽, 소련의 핵경보 시스템이 울린다. 미국 몬테나 지역에서 핵 미사일이 소련을 향해 발사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소련의 조기 경보시스템을 지키고 있던 부소장은 바로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였다.
페트로프는 빠르게 해당 데이터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실제 미국이 핵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페트로프는 이를 오류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데이터가 핵미사일이 발사된 건 맞으나 딱 한발이 발사되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이 핵공격을 하는데 단 한발의 핵미사일만을 발사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해서 페트로프는 이 경보가 오류라고 당직사령에게 보고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시 한번 핵공격 비상 경보가 울린다. 이번에는 무려 5발의 미국의 핵미사일이 공격을 시작했다는 데이터였다. 당시 소련의 경보시스템은 심각성을 말하였고, 이는 바로 소련 상부에 보고가 된다. 당시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 역시 미국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핵공격을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런데 페트로프는 이 급박한 상황속에서 이번 역시 오류라고 보고한다. 페트로프 자신이 직접 핵 대응 발사 버튼을 누르거나 상부에 핵 대응을 해야한다고 보고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류라고 한 것이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속에서 말이다. 이는 그의 직관적 판단과 핵미사일 공격에 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자신의 결정이었다.
2.1 핵공격을 막은 페트로프는 어찌되었을까?
결론은 페트로프의 생각이 맞았다. 이는 소련의 인공위성이 햇빛을 미국의 ICBM으로 오인해 잘못 울린 오류였던 것이다. 만약 페트로프가 이 경보를 믿고 핵버튼을 눌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는 곧 핵전쟁의 서막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페트로프 한 명이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웅이라 불려도 부족한 페트로프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련은 이 일이 보고 된 후 페트로프를 한직으로 보낸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마음대로 이를 결정하여 보고했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자신들의 핵시스템에 심대한 오류가 있다는 점이 밖으로 드러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해당 사건을 1급 기밀로 감추고 페트로프를 한직으로 보낸 것이다.
3. 페트로프의 이야기
이 사건 이후 페트로프는 꼬인 군생활을 마치고 군인연금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1998년, 소련은 이미 그전에 해체되어 러시아가 되었음에도 이 사건은 1급 기밀이었다가 기밀이 해제 되며 세상에 드러난다.
이후 전세계는 페트로프에 감사했고, 세계시민상, 유엔의 표창장은 물론 비폭력을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전해지는 드레스덴 상까지 수여되며 페트로프의 세계 평화를 위해 한 결정을 높이 산다.
그럼에도 페트로프는 한 인터뷰에서 "그것은 내 일이었고, 나는 단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담담하게 전한다. 이후 2017년 그의 나이 77세에 세상을 떠난다.
페트로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가 한 일은 분명 세계 평화를 위해 최일선에서 행했던 기적과 같은 일로 평가 받을만 하며 긴급한 상황속에서도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한 그의 이름은 후대에도 길이 기억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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