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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전설, 판타지)

비행기 추락사고를 2번이나 겪었다고? 세계적인 대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by 비하인드 세.모.이 2024. 10. 11.

이 세상에 비행기 추락사고를 겪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비행기의 추락이라함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행기 추락사고를 1번도 아니고 2번이나 겪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 그것도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유명인이 말이다.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소설가이자 세계를 대표하는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 주인공이다. 

1.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비행기 추락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비행기 추락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모습

1.1 배경

1930년 이후 헤밍웨이는 미국의 전 국민이 아는 유명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나이 불과 30세였다. 그는 이 무렵부터 멕시코, 아프리카 밀림 등을 다니며 수렵을 즐기거나 지프를 몰고 다니는 등 각종 레서 활동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이쯤만난 그의 두번째 아내가 상당한 재력을 가진 집안의 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후 1952년 그의 희대의 역작 <노인과바다>를 집필하고, 그는 어김없이 네번째 부인과 함께 젊은 시절의 취미가 가리키는대로 아프리카 사파리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1.2 비행기 추락사고의 전개 

지프를 몰고 사파리를 달리며 맹수들을 사냥하는 모습을 자신의 네번째 부인에게 보여주던 헤밍웨이는 아내와 함께 우간다 북서부 머치슨 폭포로 가기 위해 소형 비행기에 탄다. 그런데 조종실수로 경비행기가 전선줄에 걸리며 추락한 것이다. 이때 그가 추락한 곳은 온갖 맹수들이 드글대는 나일강이었는데 아주 다행히도 헤밍웨이와 부부를 비롯해 당시 탑승자들 모두가 경미한 부상과 함께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이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정글속에서 하루를 꼬박 버티고 다음날 선박에게 발견되어 구조된다. 

문제가 된건 그 다음날이다. 정글에서 겨우 살아남은 헤밍웨이를 태우기 위해 날아온 비행기가 헤밍웨이와 그 부인을 탑승시키고 날아오른 후 또 다시 사고가 난 것이다. 이번에는 기체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인데 이 사고로 헤밍웨이는 겨우 비행기 조종실의 문을 깨고 나와 목숨만은 건진다. 

그러나 첫번째 사고와는 달리 두번째 사고에서 헤밍웨이는 왼쪽 눈 실명, 온몸의 화상과 척추 부상, 장기들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게 된다. 이 소식에 놀란 언론들은 심지어 헤밍웨이의 사망까지 오보로 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헤밍웨이 자신이 겪은 비행기 사고에 대한 이야기와 부상 상황 등을 담은 편지를 자신의 변호사에게 전했는데 이 편지가 지난 2023년, 한 경매에 나와 약 3억이 넘는 돈에 낙찰되었다. 

2. 헤밍웨이 마지막 선택을 하다 

이 두 번의 사고로 인해 헤밍웨이는 평생을 후유증과 함께 살아야 한다. 또한 그의 정신마저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모두 불면증, 망상, 우울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정신적인 문제는 헤밍웨이에게 크게 다가온다. 특히 헤밍웨이 아버지 클래런스는 권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헤밍웨이는 이때부터 지속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언행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정신과 진료를 기피했고 1961년, 미국 아이다호주 케첨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당시만해도 헤밍웨이의 우울증을 막아줄 약이 제대로 있지 않았으며 치료를 제때 받지 않아 이미 그의 정신은 황폐화 되어 있었다. 

그가 죽을 때 함께 집에 있었던 아내는 헤밍웨이가 작은방 침실에 혼자 자겠다며 방을 나간 뒤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61살이었으며,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단 한번도 겪기 힘든 비행기 추락사고를 2번이나 겪은 헤밍웨이, 이 2번의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긴 했지만 헤밍웨이는 평생의 후유증을 얻게 되고 이후 그의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결되게 된다. 만약에 이 믿기지 않는 2번의 사고가 나지 않고 헤밍웨이가 우울증을 잘 치료 받았더라면 우리는 더 많은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