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기업 삼성! 삼성은 반도체, 전자, 건설, 관광, 의류 등 모든 사업의 선두주자가 되며 대한민국 경제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삼성도 놓친 사업 종목이 있었다. 바로 석유화학산업 정유산업이다. 삼성이 정유사업의 비전을 몰랐을까? 아니면 능력과 자금이 부족해서였을까? 세상모든이야기, 오늘은 세계 최고 기업 삼성이 놓쳤던 정유와 자동차 사업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려 한다.
1. 삼성이 놓쳤던 정유산업
1.1 배경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위한 여러 계획들을 세우면서 정유개발을 핵심 산업으로 선정하는데 얼마 후인 1966년,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최초로 민간 정유 사업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이는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인 칼텍스와 합작 조건이었으며 그 파트너로 우리나라의 어떤 기업을 정할지는 공모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다만 앞서 말한것처럼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는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로 정부의 입김이 막강했던지라 공모 형식을 띈다 하더라도 정부가 사실상 정유사업의 파트너를 정하는 것에 대한 결정권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유사업의 막대한 이익을 가질 수 있는 정유사업권을 정부가 어느 기업에게 줄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정유사업권에 대한 당시 분위기는 역시 삼성이었다. 삼성의 자본력과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 당시에도 막강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미 삼성이 정유사업권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당시 정부가 삼성에게 사업권을 줄 수 없던 배경이 2가지가 있었다.
1) 삼분 폭리사건
삼분폭리 사건은 당시 우리나라 국민의 생필품이자 건설에 필요한 설탕, 밀가루, 시멘트 가루를 유통하는 재벌 기업이 자신들의 지위를 활용하여 세금을 회피하고 폭리를 취하려 하였고, 여기에 당시 박정희 정권의 여당인 민주공화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건이다. 당시 후진국을 탈피하자며 나라 경제를 위해 노력했던 모든 국민에게 어마어마한 실망을 안겨준 사건이다.
당시 사건을 일으킨 기업은 제일제당, 대한제분, 동양시멘트 등으로 제일제당의 삼성 역시 국민적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2) 사카린 밀수사건
1966년 삼성계열사 한국비료에서 일본 미쓰이 그룹과 공모해 사카린을 몰래 수입해와 이익을 축적하려다 적발된 사건이다. 당시에도 대표 재벌기업이었던 삼성이 범죄자들이 하는 밀수사건을 꾸미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소식은 당시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병철 회장은 당시 돈이 필요한 정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삼성을 이용하고 모든 것을 덮어 씌웠다는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지만 삼성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을 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러한 두 가지의 사건 때문에 당시 정권이나 삼성의 입장에서도 정유사업권을 삼성이 갖게 될 경우 정권은 물론 삼성의 기업 운영에도 부담을 줄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정유사업권은 락희화학공업(LG화학)으로 넘어가게 된다.
1.2 결과
삼성이 놓친 정유사업권은 락희화학공업이 갖게 되었는데 이때 미국 칼텍스가 50%, 락희화학공업이 30%, 서정귀 라는 인물이 20%가 참여하는 호남정유가 설립된다. 참고로 서정귀는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 동창이기도 하다. 여튼 1973년 1차 석유파동 때 다른 기업들은 원유를 못구해서 가동률이 떨어지지만 미국 합작지원사인 호남정유는 타격을 입지 않고 공장을 가동했고 이를 통해 훗날 석유종합회사이자 지금의 LG그룹이 성장하는데 중요 자금원이 되게 된다.
세월이 지나 1980년대에 들어서 국영이었던 한국석유공사를 민간 업체에 넘기는 불하결정이 난 뒤 삼성은 다시 한 번 모든 역량을 기울여 정유업체를 인수하려 했지만 결과는 지금의 SK, 당시 선경에게 돌아가면서 이병철 회장은 분노 했다고 전해진다. 다 알다시피 이곳은 SK석유화학이 되었다.
만약 삼성이 석유화학(정유)산업을 지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의 LG와 SK 그룹의 엄청난 수익이 석유화학에서 나왔던만큼 삼성은 지금보다 훨씬 거대한 기업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역사의 배경과 이야기속에 삼성은 울며 겨자먹기로 석유화학 산업을 놓쳐야 했고 이는 이병철 회장이 두고두고 아쉬워 했던 포인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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