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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어원, 유래)

별사탕의 유래! 별사탕이란 무엇인가요? 왜 건빵에 들어갔나?

by 비하인드 세.모.이 2024. 12. 22.

각각의 음식은 그 맛과 역사에 따라 단짝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건빵하면 떠오르는 단짝 친구를 뽑으라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디단 별사탕을 뽑을 것이다. 왜 건빵에는 별사탕이 들어가게 되었나? 누가 언제부터 별사탕을 만들기 시작하였나? 오늘은 별사탕 유래 역사적 배경과 두 가지 음식이 짝꿍이 된 이야기에 주목해보려 한다. 

 

별사탕_유래

1. 별사탕 유래

많은 사람들에게 건빵에 왜 별사탕이 들어갔는지에 대하여 물어보면 열 중에 아홉은 건빵을 먹을 때 목이 메이면 별사탕이 침을 고이게 해 해결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기능적 부분을 말하든지 아니면 맛이 잘 어울려서라는 말을 할 것이다. 어느정도 인정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별사탕의 유래와 역사를 탐구하다보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1.1 일본에 처음 유래된 별사탕?

별사탕을 건빵에 넣은 것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일본 군대에서부터이다. 그러나 별사탕을 처음 만든 것은 일본이 아니다. 그 유래는 유럽에서부터 시작된다. 

별사탕은 포르투갈의 콘페이토라는 사탕에서 시작되었다. 한자로는 금평당이라는 쓰인다. 이것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도 20년전인 1570년쯤이다. 포르투갈의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선교를 하기 위해 전국통일을 눈앞에 둔 오다노부다가에게 이 콘페이토를 바치면서 시작되었다. 참고로 오다노부다가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군이기도 했다. 

공식 기록 이외에도 일본을 찾은 많은 선교사는 유럽인들에게 이 콘페이토가 전해지긴 했지만 일본에서는 제작할 수 없었다. 바로 콘페이토의 주 원료인 설탕을 만드는 사탕수수가 열대작물이라 일본에서는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탕수수 재배의 대부분은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를 만드는 제조 기술 역시 특급보안이었던지라 일본에서는 콘페이토를 생산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이를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일본인들은 보안을 유지하며 자신의 자손에게만 비밀을 전수해주었고 이는 초호화 사치품으로 분류되며 당시 지방영주격인 다이묘들도 비밀 엄수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세기에도 100% 설탕으로 만들어진 별사탕은 왕족이나 귀족들만 겨우 먹을 수 있었고 최고급 공물로써 대우를 받았다.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에 이르서도 이 별사탕은 귀한 그릇에 담겨 궁중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전해질 정도로 그 가치가 대단했다. 

1.2 일본 설탕을 확보하다 

17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금과 은을 설탕이랑 바꿀 정도로 일본은 설탕 확보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탕수수가 일본의 기후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이후 사탕수수를 우리가 많이 놀러가는 오키나와 지역에 심으면서 자체적으로 제배를 하기 시작했지만 설탕 확보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사탕수수에 대한 재배를 본격적으로 장려한 일본은 청일전쟁을 승리하며 대만까지 식민지로 삼아 대만을 사탕수수의 전진기지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수많은 설탕을 확보하게 된 일본은 나중에는 오히려 설탕이 넘쳐나면서 가격이 폭락하고 농민들이 굶어 죽는 사태들까지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뭐든 과하면 탈이나는 법이다. 

여튼 이 같은 설탕의 확보는 별사탕의 무한공급으로 이어지며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다.  

1.3 중일전쟁의 시작과 함께 건빵에 들어간 별사탕

귀한 취급을 받던 별사탕이 군인들이 먹는 건빵에 들어가게 된 것은 1920년부터이다. 이때는 이미 별사탕은 대중적인 간식으로써 그 인기가 어마어마 했는데 <일본군량사> 책에서는 이 당시 별사탕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20년에 만들어진 별사탕은 단순히 흰색이 아니라 여러 색소를 갖고 있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을 치루는 일제의 군대는, 만주 시베리아 등에 쌓인 눈을 계속 보며 전투를 해야만 했는데 온통 흰색이 가득한 혹독한 환경속에서 싸우고 별사탕마저 흰색이라면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해서 이때 별사탕에는 노란, 파란, 보라색 등의 다양한 색을 입혔다. 

또한 1931년부터는 지금 우리가 먹는 건빵과 유사하게 크기 등이 작아진 한끼 건빵에 별사탕이 추가 되었고 이때부터 건빵에는 별사탕이 함께 개별 포장되어 일본의 군대에게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2. 건빵에는 왜 꼭 별사탕일까?

그렇다면 별사탕이 왜 건빵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단 것이라면 초콜릿도 있고 다른 음식들도 많을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3가지가 있다. 

2.1 침샘을 자극하는 별사탕 

건빵을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딱 3개만 입에 넣고 씹으면 곧바로 퍽퍽하여 물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전쟁시 최대한 막아야 하는 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건빵은 러시아, 중국, 미국과 전쟁을 하며 일본이 미국 군대가 식량으로 지참하고 있던 비스킷 하드태크를 보고 개량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다보니 건빵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단맛을 통해 침샘을 자극하는 별사탕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체제였던 것이다. 

2.2 당분의 흡수력 

건빵은 비상식량이다. 전쟁중에는 끼니를 못 채우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따라서 이러한때에 건빵을 통해 병사들은 에너지를 긴급하게 보충하게 된다. 이때 별사탕은 설탕 그자체로 우리 몸에 당분으로 바로 흡수될 수 있다. 무엇보다 더 빠르게 병사들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3 용이한 저장

별사탕을 생각해봐라 뜨거운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 별사탕과는 달리 다른 사탕들은 조금이라도 날씨가 더워지면 바로 녹아버린다. 그만큼 별사탕은 저장하기가 용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맛도 식감도 날씨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 여기에 습기만 피한다면 30년까지도 저장할 수 있는 그야말로 병사를 위한 간식이 되는 것이다. 


일제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던 우리나라에 별사탕은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전해져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군대에게도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추억이라고 간직했던 건빵과 별사탕의 역사에도 일제의 잔재가 숨어 있던 것이다. 

일제의 대륙침략과 식민지 수탈에 대한 야욕이 숨어 있는 별사탕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앞으로 건빵과 별사탕을 먹을 때는 이러한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우리의 슬픈 역사를 함께 살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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